1991년, 마크 와이저는 “21세기의 컴퓨터”란 글을 통해 기술은 점점 눈에 띄지 않게 주변으로 스며들 것이라며 ‘유비쿼터스 컴퓨팅’의 시대를 예언했다. 이는 디지털 기술이 특정 공간이 아닌 우리 삶의 모든 곳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패러다임의 출발점이었다. 사실 이 개념은 메타버스와도 맞닿아 있다. 2010년대부터 사물 인터넷과 위치 기반 서비스, 센서 네트워크 등의 기술은 스마트폰과 결합해 개인 맞춤형 정보가 실시간으로 제공되는 ‘스마트 환경’으로 진화했다. 이후 2020년대에 XR, AI 등의 기술이 융합된 메타버스로 이어지며 ‘공간에 얽매이지 않고 현실을 대체하거나 확장할 수 있는 새로운 디지털 세계’가 개막되고 있다. 결국 메타버스는 어느 날 갑자기 탄생한 개념이 아니라 유비쿼터스 컴퓨팅으로 시작된 디지털 기술의 축적된 진화와 연결의 흐름 속에서 만들어져 가고 있다. 특히 메타버스는 사람과 컴퓨터, 사람과 사람 그리고 사람과 AI 더 나아가 현실과 가상이 어떻게 더 긴밀히 상호작용을 하며 새로운 경험을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기존의 기술과 다르게 봐야 한다.
❏ 실패한 과거의 메타버스
이처럼 메타버스라는 개념은 하루아침에 등장한 화두가 아니다.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 가상 세계의 가능성을 보여준 ‘세컨드라이프(Second Life)’는 디지털 아바타를 통해 또 다른 삶을 구현하며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사용자들은 가상 공간에서 소통하고, 건물을 짓고, 심지어 자체 통화인 ‘린든 달러(Linden Dollar)’로 경제 활동까지 벌였다. 마치 싸이월드의 도토리와 같은 화폐였는데 그 대상과 규모가 훨씬 더 컸다. 하지만 폭발적인 기대감과 달리 세컨드라이프는 주류 시장에 안착하지 못했다.

다양한 아바타를 선택해 가상에서 활동하는 세컨드 라이프
가장 큰 원인은 기술적 미성숙이었다. 2000년대 초반의 컴퓨터 하드웨어 성능과 인터넷 속도는 3차원 가상 세계의 방대한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처리하기에 역부족이었다. 아바타의 움직임은 끊기기 일쑤였고 화면의 로딩 시간도 길어져 사용자들의 몰입을 심각하게 저해했다. 또한, 키보드 방향키로 움직여야 하는 복잡하고 직관적이지 않은 사용자 인터페이스(UI) 역시 사용 과정에 불편을 야기했다. 결정적으로 가상 세계에 머물러야 할 강력하고 지속 가능한 동기 즉 ‘킬러 콘텐츠’의 부재는 사용자들을 다시 현실 세계로 돌아가게 만들었다.
국내에서는 ‘싸이월드’가 미니미와 미니홈피를 통해 공간 속에서 아바타 기반의 소셜 네트워킹과 다양한 아이템으로 꾸미기라는 입체적인 인터넷 서비스 경험을 선사했다. ‘도토리’라는 가상 화폐는 디지털 아이템 거래의 가능성을 보여준 선구적인 모델이었으나 2010년대 모바일 시대에 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하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입체적인 공간과 현실 경제와 연동되는 실질적인 생태계가 부재했던 싸이월드는 메타버스라기보다는 잘 꾸며진 2.5D 소셜 미디어에 가까웠다.

새로운 경험을 제공했던 입체적 공간감을 준 미니홈피
이러한 과거의 실패들은 결코 무의미하지 않았다. 세컨드라이프의 도전은 직관적인 사용자 경험(UX)과 안정적인 기술 인프라, 지속 가능한 경제 모델 그리고 사용자를 끌어들일 핵심 콘텐츠의 필요성이라는 명확한 교훈을 남겼다. 이는 스마트폰 혁명 이전 블랙베리와 같은 피처폰들이 모바일 인터넷의 가능성을 타진하며 조용히 시장을 개척했던 것에 비유할 수 있다. 가랑비에 옷 젖듯이 메타버스의 첫 번째 물결의 시행착오들은 더 큰 파도를 위한 자양분이 되었다.
❏ AI로 부활하고 있는 메타버스
한동안 수면 아래에 있던 메타버스는 2020년대에 들어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집 밖으로 나가질 못하면서 온라인에서 좀 더 현실감 있는 체험을 기대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부활하기 시작한다. 이때 제페토, 이프랜드, 포트나이트, 로블록스 등의 서비스가 기존의 평면적인 온라인 서비스와 달리 입체적인 경험과 함께 내 아바타를 조정하면서 가상 공간을 유영할 수 있어 큰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이들 서비스는 기존의 PC나 스마트폰에서 사용하는 것이라 조금 더 나아진 세컨드라이프, 싸이월드에 불과했다. 즉, 새로운 하드웨어로 보다 입체적인 상호작용이 가능한 진정한 메타버스는 아니었다.

다양한 브랜드와 공간, 사람들을 입체적으로 만날 수 있는 제페토
하지만, 2025년 들어서면서부터 메타의 퀘스트와 오리온 프로젝트에 대한 실험 그리고 구글의 무한 프로젝트 발표와 애플의 비전프로 등의 새로운 MR 기기의 등장 덕분에 메타버스의 실현이 가까워져 오고 있다. 메타버스를 다시금 부활할 수 있도록 해주는 3가지의 주요 기술 동인은 새로운 MR, 생성형 AI로 인한 콘텐츠 제작, AI agent 인터페이스를 들 수 있다.

다양한 종류의 AR 글래스
첫째, 2023년에 메타(구 페이스북)의 ‘퀘스트(Quest)’ 시리즈가 합리적인 가격으로 독립형 VR 기기의 대중화를 이끌었다면 2024년 출시된 애플의 ‘비전 프로(Vision Pro)’는 ‘공간 컴퓨팅(Spatial Computing)’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비전 프로는 단순히 가상 세계에 접속하는 것을 넘어 현실 공간에 디지털 정보를 겹쳐 보여주는 혼합현실(Mixed Reality, MR)을 구현한다. 이는 사용자를 현실과 단절시키는 대신 현실을 확장하는 경험을 제공한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IDC에 따르면 2025년 최근 분기 전 세계 AR/VR 헤드셋 시장은 전년 동기 대비 18.1% 성장하며 반등했다. 앞으로 순수 VR보다 MR과 스마트 안경 형태의 확장현실(ER) 기기가 시장 성장을 주도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메타버스의 중심이 가상현실에서 증강현실, 혼합현실로 이동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둘째, 생성형 AI가 콘텐츠의 한계를 무너뜨리고 있다. 과거 메타버스 플랫폼의 가장 큰 난제는 방대한 가상 세계를 채울 콘텐츠를 제작하는 데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든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이제 생성형 AI가 이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엔비디아의 ‘ACE(Avatar Cloud Engine)’ 기술은 텍스트 입력만으로 표정과 감정이 살아있는 AI NPC(Non-Player Character)를 생성하며 로블록스(Roblox)는 크리에이터들이 간단한 명령어로 3D 모델과 가상 환경을 만들 수 있는 AI 툴을 제공한다. 구글의 지니3 역시 메타버스 공간 속에서 실시간으로 상호작용하는 콘텐츠를 쉽게 AI 기반으로 생성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를 통해 전문 개발자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메타버스 크리에이터가 될 수 있는 시대가 열렸고 콘텐츠 부족 문제는 점차 해소되고 있다.
셋째, AI 에이전트가 새로운 인터페이스로 진화하고 있다. 과거의 텍스트나 컨트롤러 기반의 조작 방식은 이제 AI 기반의 자연어 인터페이스로 대체되고 있다. 사용자의 음성 명령이나 제스처를 AI가 맥락적으로 이해하고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거나 작업을 대신 수행해준다. 예를 들어, 메타버스 공유 대학 플랫폼인 ‘메타버시티 2.0’은 챗GPT 기반의 AI 튜터가 학생들의 학습을 돕고 가상 공간 내에서 자연스러운 대화 상대가 되어준다. 이는 기술적 장벽을 낮춰 사용자의 접근성을 높이고 더욱 풍부하고 개인화된 경험을 제공함으로써 과거 메타버스가 실패했던 ‘광활한 공간에서의 불편한 작동 방법’의 문제를 해결할 열쇠가 되고 있다.

알리바바의 Qwen 기반의 AI가 탑재된 AR 안경
이처럼 더 나아지고 있는 MR 기기와 편리해진 콘텐츠 제작법 그리고 손쉬운 조작법은 메타버스의 실현 가능성을 더욱 높여주고 있다.
❏ 메타버스가 가져올 새로운 비즈니스 생태계
AI와 결합한 메타버스는 단순한 엔터테인먼트 플랫폼을 넘어 현실 경제와 긴밀하게 연결된 제3의 비즈니스 생태계를 창출하고 있다. 가장 직접적으로 우리가 만나게 될 새로운 경험은 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오프라인 세상 속의 장소와 오브젝트에 결합된 디지털 정보들로 인한 경제계이다. MR 안경을 착용한 채 사물을 바라보면 해당 사물에 대한 제품 정보와 함께 관련된 액세서리나 부속품 등을 구매할 수 있는 쇼핑 정보가 뜬다. 또한, 특정 장소나 정보를 바라볼 때 관련된 광고가 자연스럽게 나타나 개인별 맞춤 프로모션이 가능해질 것이다. 새로운 메타버스 쇼핑과 광고 시장이 열리는 것이다.
물론 메타버스로 구현된 가상 속에서의 상거래와 마케팅도 주목해야 할 새로운 비즈니스 생태계이다. 마치 웹에서 모바일로 우리의 쇼핑과 광고 경험이 바뀐 것처럼 메타버스도 새로운 이커머스와 온라인 마케팅을 구현해 줄 것이다. 거울 앞에 서서 가상 피팅으로 옷을 입어보고 신발을 신어볼 수 있다. 정확한 사이즈를 재고 주문을 할 수 있다. 거실 한 켠에 소파나 장식장을 바꿔가면서 어떤 것이 어울리는지 비교하고 구매할 수 있다. 냉장고 속 식재료들과 어울리는 술이나 간편식을 추천받을 수 있으며, 집 식탁에 어울리는 인테리어 화병이나 그릇, 꽃 광고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 입체적인 쇼핑 경험이 가능한 AR 쇼핑
그런데, 더 기대되는 메타버스 이코노미는 ‘크리에이터 경제(Creator Economy)’이다. 2D 메타버스로 평가받는 로블록스(Roblox)는 2024년 기준 연간 약 36억 달러(약 4조 7천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는데 이 중 상당 금액이 플랫폼 내에서 활동하는 개발자 및 크리에이터들에게 수익으로 돌아갔다. 네이버의 제페토(Zepeto) 역시 수백만 명의 크리에이터들이 아바타 의상과 아이템을 만들어 판매하며 수익을 창출하는 거대 생태계를 구축했다. 여기에 생성형 AI 기술이 더해지면서 코딩이나 3D 모델링 기술이 없는 일반인들도 손쉽게 디지털 자산을 만들고 판매할 수 있게 되면 메타버스 내에서 크리에이터 경제의 규모는 더욱 빠르게 팽창할 전망이다.
메타버스는 우리가 평면적으로 보아오던 기존의 웹이나 앱과는 달리 입체적 공간이고 무한 확장 가능하다. 그렇다보니 그 공간을 채우는 수 많은 건물과 오브젝트 그리고 각종 아바타와 아바타가 입는 옷과 헤어 스타일, 음악 등의 콘텐츠를 필요로 한다. 바로 그런 콘텐츠들을 누군가는 창작해야 하고 그 콘텐츠를 거래하는 경제계가 향후 주목받게 될 것이다. 마치 웹툰이나 카카오톡의 이모티콘처럼 과거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창작자 경제계가 탄생하는 것이다. 아울러 그런 콘텐츠를 거래하는 가치 거래 수단으로서 NFT라는 블록체인 기반의 암호화폐가 부상할 것이다.
NFT(대체 불가능 토큰)는 2021년의 투기적 과열 이후 소멸했는데 사실 이 기술은 ‘디지털 소유권 증명’과 '스마트 컨트랙트'라는 거래에 대한 계약을 관리하는데 최적화되어 있다. 이는 여러 메타버스 플랫폼 간에 디지털 자산(아이템, 아바타, 부동산 등)을 자유롭게 이동하고 거래할 수 있는 상호운용성(Interoperability)의 핵심 기술로 기능하는데 적합하다. 이를 위해 ‘메타버스 표준 포럼(Metaverse Standards Forum)’과 같은 기구들이 기술 표준을 논의하고 있다. 이는 마치 웹사이트들이 HTTP라는 프로토콜로 연결되듯 무수한 메타버스들에서 소유하고 거래하는 콘텐츠들을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미래를 보장해준다.
결론적으로, 메타버스는 인터넷과 모바일의 뒤를 잇는 거대한 패러다임 전환이다. 3차원의 입체적 공간에 AI의 지능과 자동화 그리고 블록체인의 신뢰 기술이 결합되면서 제3의 경제계를 만들어주고 있다. 이제 기업들은 메타버스를 단순한 유행으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고객 경험을 혁신하고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발굴하며 미래 경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한 핵심 전략 플랫폼으로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할 결정적인 시점을 맞이하고 있다.
1991년, 마크 와이저는 “21세기의 컴퓨터”란 글을 통해 기술은 점점 눈에 띄지 않게 주변으로 스며들 것이라며 ‘유비쿼터스 컴퓨팅’의 시대를 예언했다. 이는 디지털 기술이 특정 공간이 아닌 우리 삶의 모든 곳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패러다임의 출발점이었다. 사실 이 개념은 메타버스와도 맞닿아 있다. 2010년대부터 사물 인터넷과 위치 기반 서비스, 센서 네트워크 등의 기술은 스마트폰과 결합해 개인 맞춤형 정보가 실시간으로 제공되는 ‘스마트 환경’으로 진화했다. 이후 2020년대에 XR, AI 등의 기술이 융합된 메타버스로 이어지며 ‘공간에 얽매이지 않고 현실을 대체하거나 확장할 수 있는 새로운 디지털 세계’가 개막되고 있다. 결국 메타버스는 어느 날 갑자기 탄생한 개념이 아니라 유비쿼터스 컴퓨팅으로 시작된 디지털 기술의 축적된 진화와 연결의 흐름 속에서 만들어져 가고 있다. 특히 메타버스는 사람과 컴퓨터, 사람과 사람 그리고 사람과 AI 더 나아가 현실과 가상이 어떻게 더 긴밀히 상호작용을 하며 새로운 경험을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기존의 기술과 다르게 봐야 한다.
❏ 실패한 과거의 메타버스
이처럼 메타버스라는 개념은 하루아침에 등장한 화두가 아니다.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 가상 세계의 가능성을 보여준 ‘세컨드라이프(Second Life)’는 디지털 아바타를 통해 또 다른 삶을 구현하며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사용자들은 가상 공간에서 소통하고, 건물을 짓고, 심지어 자체 통화인 ‘린든 달러(Linden Dollar)’로 경제 활동까지 벌였다. 마치 싸이월드의 도토리와 같은 화폐였는데 그 대상과 규모가 훨씬 더 컸다. 하지만 폭발적인 기대감과 달리 세컨드라이프는 주류 시장에 안착하지 못했다.
다양한 아바타를 선택해 가상에서 활동하는 세컨드 라이프
가장 큰 원인은 기술적 미성숙이었다. 2000년대 초반의 컴퓨터 하드웨어 성능과 인터넷 속도는 3차원 가상 세계의 방대한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처리하기에 역부족이었다. 아바타의 움직임은 끊기기 일쑤였고 화면의 로딩 시간도 길어져 사용자들의 몰입을 심각하게 저해했다. 또한, 키보드 방향키로 움직여야 하는 복잡하고 직관적이지 않은 사용자 인터페이스(UI) 역시 사용 과정에 불편을 야기했다. 결정적으로 가상 세계에 머물러야 할 강력하고 지속 가능한 동기 즉 ‘킬러 콘텐츠’의 부재는 사용자들을 다시 현실 세계로 돌아가게 만들었다.
국내에서는 ‘싸이월드’가 미니미와 미니홈피를 통해 공간 속에서 아바타 기반의 소셜 네트워킹과 다양한 아이템으로 꾸미기라는 입체적인 인터넷 서비스 경험을 선사했다. ‘도토리’라는 가상 화폐는 디지털 아이템 거래의 가능성을 보여준 선구적인 모델이었으나 2010년대 모바일 시대에 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하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입체적인 공간과 현실 경제와 연동되는 실질적인 생태계가 부재했던 싸이월드는 메타버스라기보다는 잘 꾸며진 2.5D 소셜 미디어에 가까웠다.
새로운 경험을 제공했던 입체적 공간감을 준 미니홈피
이러한 과거의 실패들은 결코 무의미하지 않았다. 세컨드라이프의 도전은 직관적인 사용자 경험(UX)과 안정적인 기술 인프라, 지속 가능한 경제 모델 그리고 사용자를 끌어들일 핵심 콘텐츠의 필요성이라는 명확한 교훈을 남겼다. 이는 스마트폰 혁명 이전 블랙베리와 같은 피처폰들이 모바일 인터넷의 가능성을 타진하며 조용히 시장을 개척했던 것에 비유할 수 있다. 가랑비에 옷 젖듯이 메타버스의 첫 번째 물결의 시행착오들은 더 큰 파도를 위한 자양분이 되었다.
❏ AI로 부활하고 있는 메타버스
한동안 수면 아래에 있던 메타버스는 2020년대에 들어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집 밖으로 나가질 못하면서 온라인에서 좀 더 현실감 있는 체험을 기대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부활하기 시작한다. 이때 제페토, 이프랜드, 포트나이트, 로블록스 등의 서비스가 기존의 평면적인 온라인 서비스와 달리 입체적인 경험과 함께 내 아바타를 조정하면서 가상 공간을 유영할 수 있어 큰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이들 서비스는 기존의 PC나 스마트폰에서 사용하는 것이라 조금 더 나아진 세컨드라이프, 싸이월드에 불과했다. 즉, 새로운 하드웨어로 보다 입체적인 상호작용이 가능한 진정한 메타버스는 아니었다.
다양한 브랜드와 공간, 사람들을 입체적으로 만날 수 있는 제페토
하지만, 2025년 들어서면서부터 메타의 퀘스트와 오리온 프로젝트에 대한 실험 그리고 구글의 무한 프로젝트 발표와 애플의 비전프로 등의 새로운 MR 기기의 등장 덕분에 메타버스의 실현이 가까워져 오고 있다. 메타버스를 다시금 부활할 수 있도록 해주는 3가지의 주요 기술 동인은 새로운 MR, 생성형 AI로 인한 콘텐츠 제작, AI agent 인터페이스를 들 수 있다.
다양한 종류의 AR 글래스
첫째, 2023년에 메타(구 페이스북)의 ‘퀘스트(Quest)’ 시리즈가 합리적인 가격으로 독립형 VR 기기의 대중화를 이끌었다면 2024년 출시된 애플의 ‘비전 프로(Vision Pro)’는 ‘공간 컴퓨팅(Spatial Computing)’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비전 프로는 단순히 가상 세계에 접속하는 것을 넘어 현실 공간에 디지털 정보를 겹쳐 보여주는 혼합현실(Mixed Reality, MR)을 구현한다. 이는 사용자를 현실과 단절시키는 대신 현실을 확장하는 경험을 제공한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IDC에 따르면 2025년 최근 분기 전 세계 AR/VR 헤드셋 시장은 전년 동기 대비 18.1% 성장하며 반등했다. 앞으로 순수 VR보다 MR과 스마트 안경 형태의 확장현실(ER) 기기가 시장 성장을 주도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메타버스의 중심이 가상현실에서 증강현실, 혼합현실로 이동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둘째, 생성형 AI가 콘텐츠의 한계를 무너뜨리고 있다. 과거 메타버스 플랫폼의 가장 큰 난제는 방대한 가상 세계를 채울 콘텐츠를 제작하는 데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든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이제 생성형 AI가 이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엔비디아의 ‘ACE(Avatar Cloud Engine)’ 기술은 텍스트 입력만으로 표정과 감정이 살아있는 AI NPC(Non-Player Character)를 생성하며 로블록스(Roblox)는 크리에이터들이 간단한 명령어로 3D 모델과 가상 환경을 만들 수 있는 AI 툴을 제공한다. 구글의 지니3 역시 메타버스 공간 속에서 실시간으로 상호작용하는 콘텐츠를 쉽게 AI 기반으로 생성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를 통해 전문 개발자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메타버스 크리에이터가 될 수 있는 시대가 열렸고 콘텐츠 부족 문제는 점차 해소되고 있다.
셋째, AI 에이전트가 새로운 인터페이스로 진화하고 있다. 과거의 텍스트나 컨트롤러 기반의 조작 방식은 이제 AI 기반의 자연어 인터페이스로 대체되고 있다. 사용자의 음성 명령이나 제스처를 AI가 맥락적으로 이해하고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거나 작업을 대신 수행해준다. 예를 들어, 메타버스 공유 대학 플랫폼인 ‘메타버시티 2.0’은 챗GPT 기반의 AI 튜터가 학생들의 학습을 돕고 가상 공간 내에서 자연스러운 대화 상대가 되어준다. 이는 기술적 장벽을 낮춰 사용자의 접근성을 높이고 더욱 풍부하고 개인화된 경험을 제공함으로써 과거 메타버스가 실패했던 ‘광활한 공간에서의 불편한 작동 방법’의 문제를 해결할 열쇠가 되고 있다.
알리바바의 Qwen 기반의 AI가 탑재된 AR 안경
이처럼 더 나아지고 있는 MR 기기와 편리해진 콘텐츠 제작법 그리고 손쉬운 조작법은 메타버스의 실현 가능성을 더욱 높여주고 있다.
❏ 메타버스가 가져올 새로운 비즈니스 생태계
AI와 결합한 메타버스는 단순한 엔터테인먼트 플랫폼을 넘어 현실 경제와 긴밀하게 연결된 제3의 비즈니스 생태계를 창출하고 있다. 가장 직접적으로 우리가 만나게 될 새로운 경험은 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오프라인 세상 속의 장소와 오브젝트에 결합된 디지털 정보들로 인한 경제계이다. MR 안경을 착용한 채 사물을 바라보면 해당 사물에 대한 제품 정보와 함께 관련된 액세서리나 부속품 등을 구매할 수 있는 쇼핑 정보가 뜬다. 또한, 특정 장소나 정보를 바라볼 때 관련된 광고가 자연스럽게 나타나 개인별 맞춤 프로모션이 가능해질 것이다. 새로운 메타버스 쇼핑과 광고 시장이 열리는 것이다.
물론 메타버스로 구현된 가상 속에서의 상거래와 마케팅도 주목해야 할 새로운 비즈니스 생태계이다. 마치 웹에서 모바일로 우리의 쇼핑과 광고 경험이 바뀐 것처럼 메타버스도 새로운 이커머스와 온라인 마케팅을 구현해 줄 것이다. 거울 앞에 서서 가상 피팅으로 옷을 입어보고 신발을 신어볼 수 있다. 정확한 사이즈를 재고 주문을 할 수 있다. 거실 한 켠에 소파나 장식장을 바꿔가면서 어떤 것이 어울리는지 비교하고 구매할 수 있다. 냉장고 속 식재료들과 어울리는 술이나 간편식을 추천받을 수 있으며, 집 식탁에 어울리는 인테리어 화병이나 그릇, 꽃 광고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 입체적인 쇼핑 경험이 가능한 AR 쇼핑
그런데, 더 기대되는 메타버스 이코노미는 ‘크리에이터 경제(Creator Economy)’이다. 2D 메타버스로 평가받는 로블록스(Roblox)는 2024년 기준 연간 약 36억 달러(약 4조 7천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는데 이 중 상당 금액이 플랫폼 내에서 활동하는 개발자 및 크리에이터들에게 수익으로 돌아갔다. 네이버의 제페토(Zepeto) 역시 수백만 명의 크리에이터들이 아바타 의상과 아이템을 만들어 판매하며 수익을 창출하는 거대 생태계를 구축했다. 여기에 생성형 AI 기술이 더해지면서 코딩이나 3D 모델링 기술이 없는 일반인들도 손쉽게 디지털 자산을 만들고 판매할 수 있게 되면 메타버스 내에서 크리에이터 경제의 규모는 더욱 빠르게 팽창할 전망이다.
메타버스는 우리가 평면적으로 보아오던 기존의 웹이나 앱과는 달리 입체적 공간이고 무한 확장 가능하다. 그렇다보니 그 공간을 채우는 수 많은 건물과 오브젝트 그리고 각종 아바타와 아바타가 입는 옷과 헤어 스타일, 음악 등의 콘텐츠를 필요로 한다. 바로 그런 콘텐츠들을 누군가는 창작해야 하고 그 콘텐츠를 거래하는 경제계가 향후 주목받게 될 것이다. 마치 웹툰이나 카카오톡의 이모티콘처럼 과거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창작자 경제계가 탄생하는 것이다. 아울러 그런 콘텐츠를 거래하는 가치 거래 수단으로서 NFT라는 블록체인 기반의 암호화폐가 부상할 것이다.
NFT(대체 불가능 토큰)는 2021년의 투기적 과열 이후 소멸했는데 사실 이 기술은 ‘디지털 소유권 증명’과 '스마트 컨트랙트'라는 거래에 대한 계약을 관리하는데 최적화되어 있다. 이는 여러 메타버스 플랫폼 간에 디지털 자산(아이템, 아바타, 부동산 등)을 자유롭게 이동하고 거래할 수 있는 상호운용성(Interoperability)의 핵심 기술로 기능하는데 적합하다. 이를 위해 ‘메타버스 표준 포럼(Metaverse Standards Forum)’과 같은 기구들이 기술 표준을 논의하고 있다. 이는 마치 웹사이트들이 HTTP라는 프로토콜로 연결되듯 무수한 메타버스들에서 소유하고 거래하는 콘텐츠들을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미래를 보장해준다.
결론적으로, 메타버스는 인터넷과 모바일의 뒤를 잇는 거대한 패러다임 전환이다. 3차원의 입체적 공간에 AI의 지능과 자동화 그리고 블록체인의 신뢰 기술이 결합되면서 제3의 경제계를 만들어주고 있다. 이제 기업들은 메타버스를 단순한 유행으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고객 경험을 혁신하고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발굴하며 미래 경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한 핵심 전략 플랫폼으로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할 결정적인 시점을 맞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