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서형 연구위원

LG경영연구원



모빌리티와 미래 산업 혁신을 이끄는 ‘친환경 모빌리티 혁신가’다. 현대자동차에서 차량 개발 프로젝트 및 

수소연료전지 기술 전략을 담당했고, 현재 LG경영연구원에서 전기차, 배터리, 자율주행 등 


미래 모빌리티 산업의 글로벌 트렌드와 지속가능 성장 전략을 연구하고 있다. 정책, 기술, 시장을 아우르는 폭넓은 시각으로 친환경 모빌리티와 스마트카 산업의

미래를 제시하고 있다.


모빌리티중국 EV 춘추전국 시대, 대통합의 서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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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신에너지차 시장의 무자비한 ‘가격 전쟁’이 화두다. 테슬라가 촉발한 출혈 경쟁은 정찰제와 같던 자동차 가격을 실시간 시가(時價)로 바꿔놓았다. 이제 시장은 생존한 강자들의 합종연횡과 패자들의 퇴장이 교차하는 ‘통합 전쟁’의 2막으로 접어들고 있다. 안개 속 전장에서 기업들은 저마다 다른 생존 방정식을 써 내려가고 있다. 이 거대한 혼돈은 우리에게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격변의 시대를 관통하는 최후의 생존 조건은 과연 무엇인가?


생존 방정식의 세 가지 해법, 통합과 확장 그리고 독주

통합 전쟁의 서막으로 중국의 완성차 기업들은 크게 세 갈래의 길에서 각자의 해법을 시험하고 있다.

첫째는 ‘통합을 통한 내실 다지기’다. 지리(Geely)홀딩스는 그룹의 핵심 브랜드인 지커와 링크앤코의 R&D와 판매망을 통합하는 대수술에 착수하며 자원 중복을 제거하고 나섰다. 상하이(SAIC)차 역시 산하 브랜드의 R&D 조직을 통합하고 부진한 브랜드를 재편하는 등 내부 교통정리에 한창이다. 이는 극한의 원가 경쟁에 대비하기 위한 필연적 선택이다. 하지만 이 전략이 외부로 향할 땐 얘기가 달라진다. 정부 주도로 기대를 모았던 동펑과 창안의 ‘메가 딜’은 리더십 갈등과 중복 브랜드 정리 실패로 결국 무산되었다. 이는 과거 다임러와 크라이슬러의 ‘세기의 합병’이 문화적 이질감을 극복하지 못하고 실패한 역사를 떠올리게 한다. 물리적 결합을 넘어선 화학적 통합이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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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지리, 타이저우 선언 통해 4대 브랜드 재편 'One Geely' 전략 본격 시동 (2025.1, 출처 지리차그룹)


둘째는 정반대의 길인 ‘다각화를 통한 영토 확장’이다. 니오(NIO)는 통합의 흐름에 역행했다. 기존 프리미엄 브랜드 외에 대중 시장을 겨냥한 ‘온보(Onvo)’와 소형차 ‘파이어플라이(Firefly)’를 연이어 내놓으며 영토를 넓혔다. 부품 공용화를 통한 원가 절감을 외치면서도, 2025년에만 9종의 신차 출시를 예고하는 것은 모순처럼 보인다. 이는 원가 절감을 넘어 시장 세분화를 통해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려는 고위험 고수익 전략으로 니오의 생존을 건 도박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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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좌측부터 NIO 신형 플래그십 ET9, 서브브랜드 Onvo의 L60, 소형 EV Firefly


셋째는 절대 강자의 ‘독주 체제와 딜레마’다. 시장의 포식자 BYD는 배터리, 반도체 등 핵심 부품을 자체 생산하는 막강한 ‘수직계열화’를 통해 압도적인 원가 경쟁력을 확보했다. 이는 그 자체로 강력한 생존 방정식이지만, 그 이면에는 거대한 구조적 리스크라는 양날의 검을 품고 있다. 만약 수요 예측이 빗나가거나 시장이 둔화할 경우, 막대한 고정비와 재고는 고스란히 재무 구조를 타격하는 부메랑이 될 수 있다.


전장의 그림자, 공급망의 비명과 ‘헝다 리스크’의 공포

앞서 언급한 세 가지 생존 전략인 통합, 확장, 독주는 모두 하나의 종착지로 압력을 가한다. 바로 자동차 산업의 기반인 부품 공급망이다. 최근 중국 시장에 등장한 ‘제로 마일리지 중고차’와 딜러사들의 연쇄 파산은 과잉 재고의 단적인 증거다. 특히 6개월을 넘는 대금 지급 주기는 공급망 전체가 비명을 지르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상황을 두고 장성자동차(GWM)의 웨이젠쥔 회장은 "지금 자동차 산업 안에 '헝다'가 이미 존재한다"고 강력히 경고했다. 물론 자동차 산업은 기술, 브랜드라는 명확한 실물 자산을 기반으로 하므로 부동산 기업인 헝다와 직접 비교는 어렵다. 하지만 과도한 부채와 공급망 금융에 의존해 쌓아 올린 성장은 산업의 본질과 무관하게 언제든 터질 수 있는 시스템 리스크라는 점이 본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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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BYD 그룹 브랜드 총괄 리윈페이(李云飞)는 웨이보를 통해, '자동차판 헝다설'에 대해 반박 

(2025.5.30, 출처 웨이보 @不会武功的武功李云飞)


최근 주요 자동차 제조업체들이 '납품 후 60일 내 대금 지급'을 선언한 것은 문제 해결을 위한 긍정적 신호인 동시에, 이러한 선언이 필요할 만큼 기존의 관행이 비정상적이었음을 역설적으로 증명한다. 만약 이러한 자정 노력에도 불구하고 리스크가 현실화된다면, 과거 GM이 파산보호 신청 후 단 40일 만에 브랜드와 공장의 30%를 축소하는 혹독한 구조조정을 단행하고서야 살아남을 수 있었던 역사를 기억해야 한다. 외부 충격에 의한 강제적 구조조정이 거대 기업을 살리는 유일한 길이 될 수 있다는 쓰라린 교훈이다.


덩치가 아닌 지혜, 생존의 최종 조건

중국 EV 춘추전국 시대의 2막은 가장 잔혹하고 예측 불가능한 장이 될 것이다. 이 거대한 격랑 속에서 살아남는 기업은 단순히 덩치가 크거나 특정 기술 하나가 뛰어난 기업이 아닐 것이다. 복잡하게 얽힌 리스크의 본질을 꿰뚫어 보고, 과거의 교훈을 바탕으로 민첩하게 항로를 수정하며, 최악까지 대비하는 가장 ‘현명한’ 플레이어만이 최후의 승자가 될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 진정한 승리의 영광은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완성차 기업(OEM)만이 누리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이 모든 혼돈의 파도를 온몸으로 맞으면서도 끈질기게 생존의 방정식을 풀어내고, 위기를 기회로 전환하는 공급망 생태계의 숨은 강자야말로 이 전쟁의 최후 승자가 될 자격이 충분하다.